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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 insight by Visionary View

1930년 최초의 월드컵과 명승부들

by ReelMind 2023.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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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최초의 월드컵

최초의 피파 월드컵은 우루과이에서 1930년에 열렸다. 유럽에서는 4개 국가,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에서 각각 7개, 2개 팀이 출전하여 도합 13개 팀이 출전했다. 첫 월드컵 경기는 동시간대에 치러진 프랑스와 멕시코, 미국과 벨기에의 대결이었다. 이 날 프랑스의 뤼시앵 로랑이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득점을 만들었고, 미국의 지미더글러스는 월드컵 첫 공식 무실점을 만들었다. 이때에도 조별리그와 토너먼트를 병행했는데, 지금의 월드컵 토너먼트는 조2위까지 출전하지만 이 대회는 조 1위팀만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월드컵은 2차 세계대전 중 휴식기(1942년 독일,1946년 아르헨티나)를 제외하고는 4년마다 열렸다. 1930년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스웨덴,스페인,네덜란드,우루과이가 월드컵 개최국 신청서를 내밀었다. 우루과이는 이당시 올림픽 축구에서 최강자로 군림했는데, 우루과이 정부에서도 모든 참가국들에게 일체의 비용을 지원해주기로 결정하면서 힘을 실어줬다. 결국 개최국은 우루과이로 결정되었는데, 이 역사적인 최초의 월드컵에서 오늘날까지 그당시 명경기로 조명받고 있는 경기들이 무엇인지 보도록 하자.

최초의 월드컵 명경기들

첫 번째 명경기(아르헨티나vs멕시코):

1930년 월드컵 개막전은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의 경기였고, 9골을 넣은 짜릿한 만남이었다. 아르헨티나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위치한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에서 열린 경기에서 4만명이 넘는 관중 앞에서 6-3으로 승리했다. 그 경기는 양 팀이 일찌감치 기회를 만들어내면서 빠른 출발을 보였다. 이 경기에서 처음 골망을 흔든 나라는 카를로스 푸셀레를 통해 리드를 잡은 아르헨티나였다. 이에지지 않고 멕시코는 후안 카레노가 1-1 동점골을 넣으며 빠르게 대응했다. 아르헨티나는 기예르모 스타빌레를 통해 다시 앞서나갔지만 펠리페 로사스가 골을 넣어 2-2가 되면서 멕시코가 다시 한 번 동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경기를 지배하였고,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에 4골을 추가하였다. 페셀레는 이 경기에서 두 번째 골을 넣었고, 스타빌레는 두 골을 추가해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멕시코는 힐라리오 로페즈가 골문 뒤를 찾는 등 가까스로 한 골을 더 넣었지만 재기에 역부족이었고, 경기는 아르헨티나의 6-3 승리로 끝났다. 이 경기는 높은 득점력과 양 팀의 공격력으로 유명하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공격수들은 좋은 컨디션을 보였는데, 스타빌레와 푸첼레는 그들 사이에서 6골 중 5골을 득점하였다.

 

두 번째 명경기(미국vs파라과이): 1930년 FIFA 월드컵에서 미국과 파라과이의 경기는 양 팀 모두에게 큰 기대를 모으는 경기였다. 1930년 7월 17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센테나리오에서 열렸다. 미국은 초반부터 강력한 압박을 유지하며 점유율을 지배했고, 몇 번의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그들은 결국 39분에 베르트 파테노가 선제골을 넣으면서 파라과이의 수비를 뚫을 수 있었다. 페테노데는 전반 43분에도 두 번째 골을 넣어 미국이 전반전에 2-0으로 앞서게 되었다. 후반전에 파라과이가 만회를 시도했지만 견고한 미국의 수비에 막혀 골사냥에 실패했다. 미국은 69분에 톰 플로리가 골망을 흔들면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 골을 넣으며 미국의 3-0 승리로 끝났다.

 

세 번째 명경기(우루과이vs페루): 이 경기는 토너먼트의 준결승전에서 열렸고 월드컵 역사상 가장 높은 득점을 기록한 경기 중 하나였다. 우루과이는 초반부터 경기를 지배했고, 헥토르 카스트로가 맹활약을 펼쳤다. 그는 전반전에서만 3골을 기록하며 우루과이가 전반전에 3-0으로 압도적으로 앞서게 했다. 후반전에도 그는 한 골을 추가하여 이 경기에서만 4골을 몰아쳤다. 우루과이는 계속 득점하여 3골을 추가하였고, 페드로 세아와 산토스 이리아르테가 카스트로의 득점을 추가하였다. 반면 페루는 만회골을 넣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경기에서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이 경기는 우루과이의 공격력과 카스트로의 뛰어난 활약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경기에서 4골을 기록해 FIFA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한 선수가 기록한 최다 골 기록으로 남아있다. 우루과이와 페루의 대결에서 우루과이는 공격적인 축구 그리고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 덕분에 다시 한 번 경기에서 우루과이가 토너먼트에서 가장 강한 팀이라는 인식을 공고히 했다. 준결승까지 올라왔던 페루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운 결과였지만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4강에 올랐다는 사실에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네 번째 명경기(우루과이vs아르헨티나): 1930년 FIFA 월드컵 결승전은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맞붙은 최초의 FIFA 월드컵 결승전으로, 남아메리카의 두 축구 국가들 간의 극적인 만남이 되었다. 이 경기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위치한 센테나리오 경기장에서 홈 관중들 앞에서 열렸다. 양 팀 모두 조심스럽게 경기를 치르며 실수를 피하려고 노력하는 등 경기 초반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우루과이가 첫 번째 골을 뽑았고, 파블로 도라도는 12분 만에 골을 성공시켰다. 아르헨티나는 5분 후 카를로스 푸셀레가 동점골을 넣으며 즉각적으로 응수했다. 전반전의 나머지 시간은 양 팀이 기회를 만들어냈지만 득점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팽팽한 경기로 마무리되었다. 후반에는 우루과이가 강하게 나와 산토스 이리아르테의 골로 다시 한 번 리드를 잡았다. 우루과이는 후안 페레그리노 안셀모의 골과 헥토르 카스트로의 골을 앞세우며 추가골을 넣어 4득점을 만들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아르헨티나는 포기하지 않고, 기예르모 스타빌레를 통해 간신히 만회골을 넣었다. 하지만 승부는 뒤집을 수 없었고 우루과이는 역사적인 4-2 승리를 만들었다. 결승전에서 양 팀은 모두 선수들의 기술, 그라운드에서의 열정, 벤치에서의 결단력 등을 보여주었다. 사상 첫 월드컵의 피날레였고,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우승국으로서 우루과이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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